고향의 봄

20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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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여름 육군제1하사관학교에서 하사관후보생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PT체조와 구보와 점프로 공수 지상훈련을 받느라 동기생들 모두가 악에 받쳐 

있을 때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 내가 소속된 4중대와 11중대간의 격구시합이 있었는데 우리 중대가 졌다. 거의 매 일요일마다 벌어지는 이런 시합 이긴다

 해도 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면 기합이 뒤따라서 일요일이 지겨워질 정도였다.

저녁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어 자리에 누웠지만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오늘 격구에 졌으니 곱게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취침 10분도 안 되어 ‘전 중대원은 단독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하란다.

“군대에 2등은 없다. 여러분은 오늘 격구에서 졌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는 죽었다.” 

죽었다니 아무리 기합을 줘도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죽으면 기합을 줘도 힘들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총검술 16개 동작을 

아마 스무 번쯤은 한 것 같고 그리고 나서는 앞에총 자세로 연병장을 수도 없이  뛰었고 또 PT체조를 했다. 선임하사가 분명하게 ‘금일 피티는 35회’라고 

했는데도 그리고 34회째는 모두가 서로 정신 차리라는 뜻에서 큰 소리로 ‘서른넷!!’을  외쳤는데도 반복구호를 침묵해야 하는 35회째에 ‘서른다섯~’을 외치는 

동기가 있어 횟수가 자꾸 증가되어 높이뛰기는 1,000번을 뛰어야 했다. 네 번 반복한 동작을 하나로 치는 PT체조이니 4,000번을 뛴 것이다.

연병장에서 기합을 받고는 땀투성이 중대원 모두가 1내무반 침상에 앉았다. 50년이 지났는데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는 선임하사 김진영 하사가 들어와 내무반

 통로에 히틀러처럼 섰다. 다른 중대는 곤하게 잠들어 있을 시간인 일요일 밤에 144명 중대원을 그토록 독하게 기합주고도 아무렇지도 않다. 빈말로라도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없다.

“오늘은 일요일, 하루를 마치며 군가 한다. 군가는 고향의 봄, 처음엔 노래로 두 번째는 휘파람으로 세 번째는 콧노래로 한다.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이 울컥한다. 군대식으로 악을 쓰며 노래를 하는데도 먹먹한 가슴에 노래가 잘 되질 않는다. 이어서 

휘파람으로 할 때는 여러 동기들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콧노래로 할 때는 노래인지 울음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물범벅인 얼굴 그대로 모두들 동상처럼 앉아 있었다. 선임하사가 말했다.

“군가 끝. 지금부터 5분 내로 완전 취침에 들어간다. 실시~!!”


오늘 새벽걷기를 하면서 이군에게 그때 부르던 고향의 봄을 이야기해줬다.

“슬픈 노래도 아닌데 왜들 울었어요?”

글쎄, 그때 우리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군대 가봐야 알아.”



1970년 보병1사단 종합교육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