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재라’의 추억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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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재라는 내가 만든 담배 재떨이 라이터의 줄임말이다. 골초시절 밖에서 돌아오면 맨 먼저 하는 말이 ‘담재라’였다. 그러면 이군이 얼른 

담배 재떨이 라이터를 가져다 줬다.

훈이가 자라서는 훈이가 담재라를 챙겼다. 하루는 친구 수형이가 왔는데 내가 ‘훈아, 담재라~’하니까 훈이가 얼른 담재라를 가지고 왔다. 

내가 자랑을 했다.

“야, 우리 훈이 말 잘 듣지?”

“니가 평소에 얼마나 애를 두들겨 팼으면 애가 저렇게 하냐.”


사진에서 보듯이 1980년 3월 15일 담배를 끊었다. 빌어먹을 담배 백해무익하단다. 럭키스트라익 비슷한 SUN이라는 담배를 쌓아놓고

 ‘금연’이라는 글까지 써서 들고는 가족이 기념촬영까지 했다. 결심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렇게 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담배를 피웠다. 기념촬영 한번 했다고 담배 끊을 수 있으면 누가 못 끊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남들은 한 번도 끊기 힘들다는 담배를 난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더 끊었다. (^^*~)

그러다가 제주에 온 지 2년이 지난 1988년 4월 19일 오전 다시 담배를 끊었다. 몇 번 째 인지도 모른다. 감기가 들려 목이 붓고 담배맛도 

종이 타는 냄새 밖에 안 나는데도 점심때도 되기 전에 한 갑을 다 피웠다. 

캐비넷에서 담배를 꺼내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담배 끊을 때마다 하던 생각이다)


아침에 잠이 깨면 머리맡에 있는 라디오를 틀면서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 대다가 이군이 밥 다 됐다고 

어서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두 대쯤을 피운다. 밥 먹고 나서는 당연히 한 대 피워야 하고 출근 버스 타러 나가면서도 또 피운다. 도로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피우고 직장에 도착해서도 피운다. 미팅하면서도 피우고 일 처리하면서도 피운다. 손에서 담배가 늘 붙어있다.


캐비넷에서 두 보루 쯤 되는 담배를 꺼내 책상 위에 쌓아놓고 얼마 전에 이군이 사 준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최신형 라이터까지 올려놓고 

직원들을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나 담배 끊었으니 이거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담배도 피우지 않는 장 대리가 직원들을 막아서면서 말했다.

“이거 다 내 캐비넷에 넣어 뒀다가 열흘 후에도 과장님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때 다 나눠줄게.”

장 대리는 내 금연기간을 열흘로 잡았다.


그날 저녁 윗집 조 과장 부부와 우리 부부가 외식을 하면서 술도 좀 마시고 들어왔다.

“여보,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이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보더니 손뼉을 딱 치고는 말했다.

“맞아요! 오늘 당신 퇴근 후 담배를 한 번도 안 피웠어요~!!”


담배를 끊은 지 이제 만 31년이 지났다. 그날 이후 단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 그동안 열 번도 넘게 담배 피우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다가 아참, 내가 담배 피우면 안 되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깨기도 여러 번이었다.

담배 끊던 날 이렇게 결심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다시 담배를 피우는 핑계로 하지 않겠다고. 

울산에서도 담배를 끊었는데 모시고 있던 장모님이 돌아가셨고 혼자 장례식을 준비하느라 다시 담배를 입에 댔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이유는 517가지도 넘는다. 

앞으로도 어떤 이유로도 절대 안 피운다.



1980년 3월 15일 삼척.  이렇게 하고도 서너 차례 담배를 더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