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 씨, 고맙수다양~!!

2019-03-20
조회수 115


1973년 11월 14일-.

“김형, 내일 별일 없으면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삼척의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인 최형이 지나가는 말처럼 놀러오라는 말에 그러마고 했다. 

다음 날 정라진에 사는 최형의 집을 방문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최형이 여동생이라며 소개하는 예쁜 처녀가 과일과 

차를 내왔다. 우린 차를 마시며 회사 이야기며 내가 좋아하는 낚시 이야기 등을 하다가 최형의 제의로 맹방해변과 

초당저수지 등을 돌아다녔는데 최형의 여동생인 금자 씨도 동행했다.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걸으며 ‘바닷가에서’라는 노래도 불렀고 저수지 곁을 따라 올라가 저수지 물의 원류인 

초당굴까지 걷기도 했다.


저녁때가 되어 다시 삼척에 돌아왔는데 저녁을 먹자는 내 말에 금자 씨가 송정에 가서 거기 사는 친구와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셋이 모두 기차를 타고 북평역까지 가서(북평역이 송정에 있다) 역전에 있는 다방에 들어갔다. 금자 씨가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조금 있다가 이양이라는 ‘긴 머리 긴 바지’의 처녀가 왔다. 빨간색 점퍼와 갈색 바지 그리고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때의 내 나이가 만 26살이었는데 어머니가 어서 장가를 가라고 해서 형수의 소개로 태백의 어느 처녀와 선을 보기도

했지만 왜 그런지 장가 가야겠다는 마음이 없었고 또 요즘 말로 필이 꽂히는 처녀를 만나지도 못해서 그냥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금자 씨의 친구라는 이양을 본 순간 정말 필이 꽂혔다. 넷이서 다방을 나와 중국집에 가서 뭘 먹었는데(옛날엔

처녀총각이 만나면 중국집에 가고 극장에 가는 게 순서였다) 난 지금도 그날 뭘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리고는 헤어져서

최형과 금자 씨와 나는 기차를 타고 삼척으로 돌아갔다. 

이양의 이름은...? 나도 모른다. 금자 씨가 이양이라고만 소개해서.


다음 날부터 3일간 야근을 했다. 그때는 핸드폰은커녕 집에 전화도 없어서 연락은 이웃집과 직장의 전화를 이용했는데

금자 씨한테 송정에서 만난 이양의 이름이 뭔지 집이 어딘지 물었더니 잠시 있다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친구의 집은 모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이름도 모르느냐고 말할 새도 없었다. 동료인 최형한테 물어봐도

모른단다...


이양을 처음 만나고 며칠이 지나 쉬는 날 이양을 찾으러 집을 나섰다. 

금자 씨가 전화를 하고 10분 쯤 후에 나타났으니 송정의 북평역에서 반경 1km 이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왔다면...? 촌에서 택시 타고 친구 만나러 다닐 처녀는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전 처음 최형과 금자 씨와 

삼척에서 송정에 가고 올 때도 기차를 탔지 택시를 타진 않았다.


여하튼 이양의 사진 한 장 없이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고 북평인지 송정인지 삼화인지 사는 곳도 모르면서

이 씨 성을 가진 ‘긴 머리의 처녀’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오늘 하루에 찾지 못하면 앞으로 대여섯 번 더 찾아가서 이 동네

저 동네 뒤지면 만나지 않을까 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내 복장은 이랬다. 까만색 모자에 까만색으로 염색한 군대야전잠바 그리고 역시 염색한 군복 바지에 

군화이니 위에서 아래까지 시커먼 차림이다. 그 차림으로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를 하려고 기차를 타러 삼척역으로 

가는데 강을 건너가는 삼척교 입구에서 최형의 누님을 만났다. 최형의 누님은 부군이 발전소 일을 좀 해서 알고 있었다.

“혹시 송정에 사는 이양이라는 금자 씨 친구 집이 어디인지 아세요? 이름은요?” 

이미 최형이나 금자 씨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저하면서도 평소 내가 부군의 일을 도와준 때문인지 이름은 모르고 

집이 비행장 부근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그러면 됐다. 북평 비행장 부근 집집을 다 뒤져보면 찾게 되겠지. 기차를 타고 북평역에서 내려 비행장 진입로에 있는

구멍가게(그 가게 이름이 오시오상점이라는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에 들어가서 긴 머리에 여차저차하게 생긴 처녀를

찾는다고 했더니 세상에~!! 바로 옆집에 산다고 한다.

내가 존경하는 고 정주영 현대회장님이 그랬다고 한다. 뭘 지시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좀 힘들 거 같다고 하면

‘해봤어? 병신 같이’라는 말이 돌아온다고 한다.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해봐야 한다. 나처럼.


그래, 한양에서 김 서방을 찾기로 그리고 고생 단단히 할 각오로 이양을 찾아 나섰지만 송정에 도착해서 딱 한 번에

이양이 사는 집 마당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양은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동생과 김치를 담그는지 마당에서 배추 등을 손질하고 있다가 시커멓게 들어서는 나를 

보고 토끼처럼 놀라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도 웬일이세요하고 묻는다. 

웬일이냐니, 총각이 처녀를 찾아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담.


그 후 꼭 6개월이 지난 다음 해 5월 14일 이양은 내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만 44년이 지나는 동안 늘 내 편이고 

내 후원자이고 변함없이 사랑스런 내 아내로 살고 있다.


지난 4월 초 사진을 하는 지인을 따라 서귀포 어느 숲에서 처음으로 금자란을 카메라에 담았다. 

붉은꽃은 진달래 노란꽃은 개나리 밖에 모르는 내가 금자란은 평생 그 이름을 잊지 않을 난이 되었다. 

44년 전 그날 금자 씨가 이양을 소개해 주지 않았으면 난 지금의 이 행복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어서. 

금자 씨 고맙수다양~.


0201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