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의 추억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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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인 1973년 11월 18일, 내가 처음으로 이군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이군은 예쁜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마당에서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32년 전인 1987년 12월 8일, 같은 직장의 산쟁이 김갑수와 눈보라 속에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내가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어 언 볼펜을 입으로 

불어가며 글을 썼다. ‘87. 12. 8 김아무개와 김아무개가 등정했다’고. 그리고는 글을 쓴 스카프를 나뭇가지에 묶어 놨다. 다음에 오를 누군가가 스카프를 

풀어보고 이어서 쓰길 바라면서.


스카프는 여자들이 멋을 내기 위해서 이용하기도 하고 일할 때 머리칼이 흘러내리지 않게도 하고 산행할 때 목의 보온을 위해서나 모자 아래에 써서 

햇빛을 가리기도 하고 땀을 닦기도 하고 때로는 응급 시 붕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서부영화에서 죤 웨인은 항상 스카프를 목에 둘러 흙모래로부터 목을 

보호하기도 했다. 이렇듯 스카프는 쓰임새가 많다.


지난 해 가을 이른 시간 영실코스를 오를 때 해발 1500미터 표지석 앞에서 이군이 버프를 꺼내 달라고 해서 배낭을 내려 꺼내줬다. 그리고는 윗세오름까지 

올라 사진을 찍고 하산하는데 해발 1500미터 표지석을 지나다보니 로프에 스카프 하나가 묶여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내 것이었다. 아침에 여기서

 배낭을 내리고 이군에게 버프를 꺼내줬는데 그때 버프와 함께 배낭 속에 있던 스카프를 떨어뜨린 게 틀림없다. 

이 스카프는 몇 년 전 랑탕 히말라야를 트레킹할 때 동행한 오은선 대장이 선물로 준 건데 자칫 잃어버릴 뻔한 것을 마음 착한 누군가가 주인 찾아가라고 

로프에 묶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배낭을 정리하다보니 똑 같은 스카프가 배낭에서 나왔다. 산에서 가져온 스카프와 비교해보니 똑 같았다. 메이커와 디자인은 물론 

그 동안 몇 번 쓰지 않아 거의 새 거와 같은 것까지 똑 같았다. 정말 똑 같았다. 산에서 배낭을 내렸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은 것 까지.... 아뿔사...


살면서 이런 일이 또 없었을까. 내가 분명히 틀림없다고 믿고 말했던 일 중에 이렇게 잘못된 일이 또 없었을까. 고의는 아니라 해도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적은 또 없었을까. 마음에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까.

큰 돈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스카프 하나의 일이 아니라 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결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하루였고 류시화 시인의 

인도여행기 ‘신발 도둑’이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