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원주에 있는 육군제1하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하루는 친구 상호가 면회를 왔다. 당시 상호는 가까운 원주시내의
정비보급단에서 작대기 두 개 일등병으로 복무할 때였는데 상호는 나를 면회하려고 전날인 토요일에 홍천에 사는 누님을 찾아가서
맛있는 김밥을 싸고 계란을 삶고 해서 가지고 왔다. 당시 군대에서 하는 말이 피(被)자 붙으면 ‘서면 배고프고 앉으면 졸린다’는 말이
있을 때였는데 정말 늘 항상 언제나 배가 고팠다. 내가 하사관학교까지 오는 동안 논산 26연대에서 보병기본훈련 금마 27연대에서
박격포훈련을 받고 왔는데 거기에서도 늘 배가 고팠고 하사관학교에서는 더 배가 고팠다. 보병 71기인 우리와 동기인 다른 중대에서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후보생 네 명이 탈영을 했다가 붙잡혀 A연병장에서 공개군사재판을 받는 불행한 일까지 있었다. 여하튼 밥을
먹고 나서도 한 번도 배가 부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배가 고팠고 배만 고프지 않으면 어떤 훈련도 겁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정문 가까이 있는 면회실을 나와 잔디밭에서 상호가 가지고 온 김밥 계란을 먹는데 상호는 김밥 두어 개를 먹고는 더 먹지 않았다.
입대 후 거의 7개월간 늘 배가 고팠던 나는 상호에게 같이 먹자는 말도 하지 않고 김밥도시락 두 개와 계란 열 개를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누더기를 입고 춘향을 찾은 이도령이 장모가 차려주는 밥을 이렇게 먹지 않았을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 상호가 그때 이야길 했다. 도시락이 두 개가 더 있어도 넌 다 먹을 거 같았어. 너 먹는 거 보니 난 먹을
엄두가 나지 않더라.
면회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 상호가 돈을 쥐어 주길래 돈은 필요 없고 라면을 하나 사다달라고 했다. 후보생이 현금을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퇴교여서 절대 소지해선 안 되고 마침 다음 날 치악산을 넘어 가는 산악행군이 있어서 내겐 먹을 게 필요했다. 배낭에
M1소총까지 메고 해발 1,282미터의 치악산 정상을 넘어 돌아오는 힘든 행군을 하는데 작은 봉투에 든 건빵 하나와 라면 두 개가
먹을거리의 전부였으나 친구 덕분에 라면 세 개를 배낭에 넣으니 마음까지 든든했다.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소총과 배낭을 메고 행군을 시작해 점심때 쯤 치악산 정상에 올랐다. 잔설을 반합에 녹여 라면을 끓여먹는데
그 맛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점심을 먹고 잠시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의 라면 맛을 알고 있는 선임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들이 훈련을 마치면 모두 1주일간 휴가가 주어지고 집에 가게 되는데 집에 가면 꼭 이렇게 해보길 바란다. 라면을 한 박스
사서 방안에 가지고 들어가서는 누가 들어와서 뺏어 먹으면 안 되니까 방문을 안으로 꼭 잠그고 끓여 먹길 바란다.”
금방 식사를 했는데도 여기저기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다섯 개는 먹겠지 열 개도 먹을 거 같아 하는 소리도 들린다.
나도 네 개는 문제없이 먹을 것 같았다.
그 해 7월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더플백을 메고 원주역에서 삼척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동기 몇몇과 식당에 들어가서 라면 두 개씩을
주문했는데 난 그걸 다 먹지 못했다.
오늘 점심 때 이군과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에 지난 해 내가 담근 김치 한쪽을 넣으면 국물까지 맛이 있어 다 먹게 된다.
그렇게 맛있다. 그러나 지금도 50여 년 전 치악산 정상에서 먹던 그 환상적인 라면 맛과 함께 나를 면회하기 위해 홍천까지 다녀온
친구 상호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상호의 면회는 내 36개월간의 군 생활 중 유일한 것이었다.
1969년, 원주에 있는 육군제1하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하루는 친구 상호가 면회를 왔다. 당시 상호는 가까운 원주시내의
정비보급단에서 작대기 두 개 일등병으로 복무할 때였는데 상호는 나를 면회하려고 전날인 토요일에 홍천에 사는 누님을 찾아가서
맛있는 김밥을 싸고 계란을 삶고 해서 가지고 왔다. 당시 군대에서 하는 말이 피(被)자 붙으면 ‘서면 배고프고 앉으면 졸린다’는 말이
있을 때였는데 정말 늘 항상 언제나 배가 고팠다. 내가 하사관학교까지 오는 동안 논산 26연대에서 보병기본훈련 금마 27연대에서
박격포훈련을 받고 왔는데 거기에서도 늘 배가 고팠고 하사관학교에서는 더 배가 고팠다. 보병 71기인 우리와 동기인 다른 중대에서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후보생 네 명이 탈영을 했다가 붙잡혀 A연병장에서 공개군사재판을 받는 불행한 일까지 있었다. 여하튼 밥을
먹고 나서도 한 번도 배가 부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배가 고팠고 배만 고프지 않으면 어떤 훈련도 겁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정문 가까이 있는 면회실을 나와 잔디밭에서 상호가 가지고 온 김밥 계란을 먹는데 상호는 김밥 두어 개를 먹고는 더 먹지 않았다.
입대 후 거의 7개월간 늘 배가 고팠던 나는 상호에게 같이 먹자는 말도 하지 않고 김밥도시락 두 개와 계란 열 개를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누더기를 입고 춘향을 찾은 이도령이 장모가 차려주는 밥을 이렇게 먹지 않았을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 상호가 그때 이야길 했다. 도시락이 두 개가 더 있어도 넌 다 먹을 거 같았어. 너 먹는 거 보니 난 먹을
엄두가 나지 않더라.
면회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 상호가 돈을 쥐어 주길래 돈은 필요 없고 라면을 하나 사다달라고 했다. 후보생이 현금을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퇴교여서 절대 소지해선 안 되고 마침 다음 날 치악산을 넘어 가는 산악행군이 있어서 내겐 먹을 게 필요했다. 배낭에
M1소총까지 메고 해발 1,282미터의 치악산 정상을 넘어 돌아오는 힘든 행군을 하는데 작은 봉투에 든 건빵 하나와 라면 두 개가
먹을거리의 전부였으나 친구 덕분에 라면 세 개를 배낭에 넣으니 마음까지 든든했다.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소총과 배낭을 메고 행군을 시작해 점심때 쯤 치악산 정상에 올랐다. 잔설을 반합에 녹여 라면을 끓여먹는데
그 맛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점심을 먹고 잠시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의 라면 맛을 알고 있는 선임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들이 훈련을 마치면 모두 1주일간 휴가가 주어지고 집에 가게 되는데 집에 가면 꼭 이렇게 해보길 바란다. 라면을 한 박스
사서 방안에 가지고 들어가서는 누가 들어와서 뺏어 먹으면 안 되니까 방문을 안으로 꼭 잠그고 끓여 먹길 바란다.”
금방 식사를 했는데도 여기저기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다섯 개는 먹겠지 열 개도 먹을 거 같아 하는 소리도 들린다.
나도 네 개는 문제없이 먹을 것 같았다.
그 해 7월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더플백을 메고 원주역에서 삼척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동기 몇몇과 식당에 들어가서 라면 두 개씩을
주문했는데 난 그걸 다 먹지 못했다.
오늘 점심 때 이군과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에 지난 해 내가 담근 김치 한쪽을 넣으면 국물까지 맛이 있어 다 먹게 된다.
그렇게 맛있다. 그러나 지금도 50여 년 전 치악산 정상에서 먹던 그 환상적인 라면 맛과 함께 나를 면회하기 위해 홍천까지 다녀온
친구 상호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상호의 면회는 내 36개월간의 군 생활 중 유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