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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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 앞에선 아이라는 말도 있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큰 녀석이 어릴 때 아파서 소아과병원에 입원한 중에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같은 병원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가까운 데에 마땅한 병원도 없고 심한 병환도 아니어서 어린이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인데 어떻게 노인을 소아과에 모시고 왔느냐는 말에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답해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제주에 어머니가 오셨다. 아내가 서울에 가 있어서 어머니와 둘이서 밥 해 먹으며 

소꿉장난하듯이 지내고 있는데 어머니는 1915년 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96세이시다.
위의 말대로 어머니는 나이 많이 드셨으니 '당연히' 어린애가 되셨고 난 부모 앞의 자식이니
'당연히' 아이가 되어 우리 집엔 목하 두 어린이가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 저녁 무렵 반찬을 사려고 마트에 다녀오겠습니다 했더니 반찬값에 보태 쓰라시며 내 손에
돈을 쥐어 주시길래 예 어머니 하고 얼른 받았다. 안 받으면 섭섭해 하실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돈을 쓸 수가 없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보고 있다.
이 돈은 언제 어머니 쌈지에 들어갔다가 나온 걸까.
술집에선 안주 반 접시 값도 안 되는 이 돈이 어머니에겐 얼마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제 체중이 35kg도 안 될 정도로 뼈만 앙상한 몸으로 내 집에 오셨으면서도 혹여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봐 쌈지를 열어 꺼내주신 이 돈을 어떻게 할까 깊은 밤 혼자 궁리 중이다


2010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