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제목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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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느 분이 내게 전화를 해서는 홈페이지의 사진에 왜 제목을 붙이지 않느냐고 했다.

제목을 붙이면 사진이 훨씬 더 가치가 있어 보이고 살아난다고도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사진을 보고 제목을 보면 '아...'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로 사진에 적합한 근사한 제목을 여럿 보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인 30년 전 쯤 '월간사진'의 독자사진란에서 주머니용 성냥갑보다 작은 입선한 사진이 생각난다.

'만추(晩秋)'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사진을 설명하면 이렇다.

노란단풍이 가득한 공원, 한 노인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화면의 3/4 지점을 구부정한 허리로 걸어가는 모습이 있는

단순한 사진이다.

그 사진에선 미래보다 과거에 훨씬 더 많은 공간을 두었다....

늦은 가을과 노인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배분.... 만추라는 제목.... 이 사진은 지금도 기억될만큼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어느 관광사진공모전의 입상작품집에서 본 '끔찍한 제목'도 생각난다.

어느 관광지의 가게에서 우리의 탈 등을 고르며 신기한 듯 웃고 있는 외국인들을 찍은 사진인데 제목이 '외국인'이었다....


사진의 제목을 짓게 되는 과정은 여러가지가 있다. 피사체를 보는 순간의 강렬한 느낌으로 촬영한 사진은 사진을 보기도 

전에 제목이 지어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사진적으로 좋은 사진을 찍어놓고도 결국 제목을 짓지 못해 '무제'라든가 

'심상'이라는 제목을 '짓기도' 한다. 물론 '무제'나 '심상'이 제목을 못 지어서가 아니라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느낌의 폭을

넓혀주려는 긍정적인 의도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사진의 제목은 사진의 내용을 북돋아줘야 한다.

사진을 보고 감동하고 제목을 본 후엔 더 크게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사진에서 '외국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더 크게 감동할까.

차이코프스키가 '비창'을 만들어놓고도 제목을 짓지 못해 발표를 1년간이나 미루었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아니,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다면 , 또 반드시 제목을 지으려한다면 차이코프스키처럼 못 할 것도 없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해돋이 사진은 '일출'이라고 짓고 해넘이 사진에 '일몰'이라는 제목만 붙인다면 차라리 그냥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사진의 제목을 보면 그 사진가의 지적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사진에 제목을 달지 않는 것은 차이코프스키의 고심을 흉내내려는 게 아니고 어수룩한 제목 때문에 혹여 두들겨 

맞지나 않을까 하고 겁을 내는 소심한 내 성격 때문이다.


2012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