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회째 산행을 하고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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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6  산행-365

지난 4월 4일 이후 140일 만에 산행을 했다. 그 동안 어깨 통증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산에 오르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산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없어서였다.
이틀 전 많은 비가 왔다. 어제 아침 제주뉴스를 보니 한라산 진달래밭에 865mm나 되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즉시 인터넷을
열어 백록담의 실시간 웹카메라를 찾아보니 보통 때의 올챙이 모양이 아닌 대형 원형 ‘산정호수’가 생겼다.
내일 올라갈까 아니면 이틀 후부터 영향을 미친다는 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지나간 다음에 오를까 하다가 볼라벤이 백록담에
얼마나 많은 비를 뿌려줄지 알 수가 없어 오늘 오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볼라벤이 지난 후 다시 산행을 하기로
했다.

365라는 숫자에 1년의 날짜 수 외에 무슨 다른 의미가 있을까. 100회 200회 300회 째의 산행 때 나름대로 작은 감회가 있긴
했지만 365회 째 산행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몇몇 분들로부터 365회 째의 산행 때는 동행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이 산행에 나름대로 작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좀 더 멋진 날 산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좀 더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날 산에 오르고 싶은 작은 욕심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가능한 한 어느 코스를 택하던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65회 째 산행은 최소한 5월이나 6월 중에 할 줄 알았다. 진달래와 철쭉이 그때 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금년도
진달래와 철쭉의 개화 상태가 근래 가장 나쁜 상태라는 소식이고 윗세오름에서 근무하는 분한테서는 꽃 찍으려고는 산에 오지
말라는 연락까지 왔다. 그 외에도 어깨 통증으로 몇 개월 째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통에 산에 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건 산에 안 가는 핑계다. 산에 갈 마음만 있었으면 더 아파도 갔을 것이다.

혼자 산행을 하려고 배낭 카메라 스틱 등을 챙기고 있는데 이군이 ‘나도 가요’ 한다. 1주일 전 왼쪽 발가락 하나를 크게
다쳐 어제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성판악에서 정상까지의 긴 코스를 타는 산행을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실은 며칠 전부터 365회 째 산행은 이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그동안 내가 산행할 때마다
산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해주고 내가 산에 가면 돌아올 때가지 걱정하던 이군이어서 나름대로 ‘아끼고 있던’ 365회 째 산행을
이군과 함께 함으로써 나름대로 작은 의미라도 부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군이 뜻밖에도 동행하고 싶다고 한다.
“괜찮겠어?”
“걸어요.”
같이 가자. 가다가 정 걷기가 힘들면 돌아오면 되지.
렌즈는 15mm 24mm 16-35mm 24-105mm 등 네 개만 챙겼다. 24mm는 스냅용이다. 다른 렌즈보다 가벼워서 스냅용으로

쓰려고 했다. 이군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가져갈 필요가 없는 렌즈다.
산행코스는 성판악으로 올라가서 관음사코스로 하산하기로 했고 정상에서 다른 사정이 있으면 올랐던 성판악코스를 다시 타기로
했다. 이군과 함께 하는 산행이어서 걷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4시 아파트 출발, 5시 산행 시작, 10시 정상 도착으로 잡았다.

산행을 앞두고는 늘 마음이 설렌다. KBS에서 방영하는 ‘슈퍼 피쉬’까지 보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거의 깊은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가 2시 반에 일어났다. 충전기에 물려놨던 배터리를 카메라에 넣고 헤드랜턴과 장갑은 벨트 팩에 넣었다.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이군도 잠이 깨서 준비를 한다. 어젯밤 만든 김밥을 잘라 알미늄 도시락통에 담고 간식거리도 배낭에
챙겨 담는다. 신령님께 드릴 소주도 한 병 배낭에 넣었다. 물은 1리터짜리 하나 500cc짜리 두 개를 준비했다.

3시가 다 되어 샤워를 했다. 산에 가기 직전에 늘 샤워를 하는 건 아닌데 오늘은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미역국에 밥 한 술을
먹고 03:48분 아파트를 나섰다. 하늘은 구름에 덮였지만 가끔 별도 보인다. 동쪽으로 달려 5.16도로에 들어서서는 다시
성판악을 향해 남쪽으로 달렸다. 길가 여기저기서 노루들이 어슬렁거린다. 저 녀석들은 밤에 잠도 안자고 저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아니면 일찍 일어나서 다니는 걸까.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습기도 없이 아주 시원하다.

성판악 주차장에 차를 댔다. 이른 시간이지만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불 꺼진 차 두 대만 보일 뿐이다.
그 차조차 성판악에 근무하는 직원이나 매점 사람들의 차인지 등산객이 타고 온 차인지 알 수가 없다.

04:28분 해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산행을 시작했다. 이군이 성판악코스로 정상을 향하기는 1986년 제주에 오던 해 부처님
오신 날 우리 식구 넷이 함께 오른 후 처음이다. 캄캄한 숲길엔 바람 한 점 없이 밤안개가 자욱하다. 금방이라도 예쁜 숲의
요정이 ‘안녕하세요~’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캄캄한 밤의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근사한 숲의 분위기 때문일까 나도 이군도
숨이 차지도 않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이군은 손주 수현이 이야기를 했다. 새벽 산책을 하면서 벌써 열 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지만 나도 그런 이야기가 조금도
지겹지 않아 같이 웃고 맞장구를 친다. 언젠가 이군이 그랬다. 자식들 결혼해서 손주 낳으면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고.
병치레 잦은 자식 둘 키우기도 힘들었는데 손주까지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런데 그 말은 수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무효가 되었다. 손주가 늦어지자 산에 가서도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도 예쁘게 뜬 초승달을 보고서도 커다란 보름달을
보고서도 심지어는 큰 바위만 보고서도 손주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군의 정성 때문일까 자식 결혼 10년 만에 마침내
수현이가 태어났다. 그것도 부처님 오신 날에.
지난 5월 두 돌이 된 수현이는 이군의 신앙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말은 이래서 생겨났나 보다. 얼마 전부터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 줘 버리고 수현이 사는 가까운 데로 이사 가자는 말까지 한다.

날이 밝으니 숲의 정취는 더 아름답다. 이런 숲길이라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사진 안 찍어도 걷고 싶다. 숲의 정기라는 게
있다면 그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06:07, 성판악에서 4.1km 거리의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건물을 다시 지으려고 하는지 건축 자재가 쌓여있고 굴삭기
한 대가 있다. 굴삭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등산로로는 어림도 없고 몇 개로 분해해서 헬기로 옮긴 후 현장에서 조립한
게 아닐까 싶다.
기존의 대피소엔 사람 하나 없는데 주위엔 곳곳에 뱀을 주의 하라는 경고가 써 있다. 뱀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까지
해놨을까. 한라산 뱀이 여기로 다 모이는 걸까.
뒤에서 스틱 짚은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긴 머리를 한 처녀 하나가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간다. 얼마 전에
올레길에서 혼자 걷던 여자가 살해되기도 했는데 여자들은 여전히 겁이 없나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 없는 한라산인데도 이틀 전의 폭우로 곳곳에 물이 흐르고 비에 젖은 숲에선 싱그러움과 함께 근사한
향기가 넘친다.
“가재미눈이 되겠어요.”
“왜....?”
“숲속에 예쁜 나무가 많아서 여기 보고 저기 보고 하느라고요.”
그렇지, 그래야 한다. 등산한다면서 오로지 앞 사람 뒤통수만 보고 길바닥만 보고 정상에 갔다 왔다고만 해선 등산의 맛을
반도 못 보는 것이다. 가재미눈이 되더라도 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만끽해야 한다.
이군은 발 아프다는 말도 안 하고 잘도 걷는다. 오늘 종일 그랬으면 좋겠다.

07:00 사라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1994년 7월 1일 회사 직원들과 사라오름에 갔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끼꽃이 예쁘게 필까.
그때만 해도 통제구역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기 좋게 탐방로를 만들어 놓은 걸 뉴스에서 몇 번 봤다.

이젠 나도 이군도 땀을 많이 흘릴 정도로 걷기가 약간 힘들다. 힘들게 걸으면서도 한 가지 걱정은 정상에서 백록담을 볼 수
있을지 여부다. 담수량이 많은 건 어제 확인했지만 운무에 덮여 아무 것도 안 보인다면...
그런 건 신령님 관할 사항이다.

07:52분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했다. 흐르는 운무는 여전하지만 가끔 하늘이 밝아지고 파란 하늘이 스치듯 나타나기도 한다.
운무의 흐름을 보니 정상엔 바람이 강할 것 같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샀다. 물은 1리터가 남았지만 부족할 것 같아 작은
것 한 병을 더 샀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잠깐 있었는데도 해발 1500미터의 고도로 기온이 낮아 땀에 젖은
몸이 으슬으슬하다. 그래도 증명사진 몇 컷을 찍었다.

08:20분 진달래밭을 출발해서 10분쯤이나 갔을까 갑자기 운무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가 다시 덮이곤 한다. 운무층이
해발 1500미터 정도인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정상에서 맑은 하늘 아래의 백록담을 만날 수 있다. 조금 더 걸으니 이젠
완전히 파란 하늘이다. 얼마나 푸른색이 짙은지 날씨 좋은 가을날의 하늘 같다. 선크림을 바르고 팔토시도 했다. 스카프를
물에 적셔 머리에 얹고 모자를 썼다. 힘을 내서 걸었다.

숲지대를 지나자 서귀포와 남쪽바다가 나타났다. 바다 위엔 흰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이군에게 천천히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정상에서 관음사코스를 타게 되면 이런 풍경을 이따가는 보지 못한다. 다시 성판악코스를
탄다 해도 이런 풍경이 언제 사라질지 알 수가 없다. 카메라 배터리는 여분이 있고 메모리 카드도 32GB 16GB 두 개가 있으니
충분하다. 화구벽의 급경사면과 서귀포 시가지와 바다와 흰구름을 마음껏 담고 또 담았다.

10:00 동릉 정상에 도착했다. 여름철에 성판악코스로 정상에 오르긴 처음이다. 성판악에서 04:28분에 출발했으니 네 시간 반
쯤 걸린 것이고 진달래밭에서 50분 쯤 지체한 걸 감안하면 빠른 편이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산에 오른 사람이 별로 없다.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온다고 하니 사람들이 지레 겁을 내고 산에 오지
않은 모양이다.

정상의 목책에 다가가 백록담을 들여다보고는 나도 모르게 ‘아....!!’ 소리를 냈다. 이렇게 담수가 많이 된 백록담은
이제까지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다. 마미야 유니버샬을 쓸 때인 아주 오래 전에 단 한 번 그것도 흐린 날 서북벽 방향에서였다.
파란 하늘, 서귀포와 제주시 양쪽으로는 하얀 구름, 그리고 화구벽 정상 아래에 예쁜 ‘산정호수’ 펼쳐져 있었다. 배낭에서
삼각대를 풀어 펼치는데 내가 너무 허둥대는지 이군이 ‘천천히, 천천히 하세요!’ 한다. 어떻게 천천히 하라는 말인가.
이러다가 갑자기 운무가 온 한라산을 덮고 비까지 내리는 경우를 이제까지 몇 번이나 겪었다. 그럴 때,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하고 얼마나 후회를 했었나. 그래서 이런 풍경을 만나면 생각할 것도 없이 카메라에 장착된 렌즈로 우선 몇 컷을 찍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런 다음에 화각을 봐서 렌즈를 바꾸어야 안심을 한다. 내 스스로의 매뉴얼대로 우선 24-105mm 렌즈의
24mm에서 몇 컷을 찍고는 얼른 16-35mm로 바꾸어 16mm에서 여러 컷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시 15mm로 찍었다. 1/3 exp씩
브라켓팅을 하면서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했다. 내가 언제 이런 풍경과 마주할 것인가.
정상에 도착하면 우선 이군과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래서 이군과 함께 한 365회 산행기념 사진을 인화해서 거실에
걸어두려고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그런 사진은 사진꺼리가 없는 날에나 하는 일이다.
사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제까지 내 사진작업을 봐 온 이군이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내가 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다시피 옮겨 다니며 바쁘게 셔터를 누르자 이군은 교환렌즈가 든 벨트팩을 들고 따라다니며 도와준다.
마누라는 오로지 그래야 한다. 이심전심으로 통해야 한다. 바쁜 마음으로 “어이~ 거기 어안렌즈 좀 갖다 줘~!!” 하고
소리칠 정도면 이미 마누라의 자격이 없다.

언제 이런 풍경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로 나타났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난데없이 서귀포 쪽에서 한 차례 짙은
구름이 밀려와서는 백록담을 덮어 버린다. 그리고는 잠시 후 사라지더니 다시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그렇게 흐리고 개기를
반복하면서 차츰 흐린 시간이 길어졌다. 날씨가 흐려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서귀포 앞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흰구름 등은
사라졌다.
찍고 또 찍었다. 백록담을 충분히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서 이군과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낮은 기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이군은 추위 때문에 내 셔츠까지 꺼내 입고도 덜덜 떨었다. 지금 시내는 32도 쯤의 기온과 높은 습도로 푹푹
찌고 있을텐데....

32GB 메모리 카드를 다 쓰고 16GB 카드로 몇 십 장을 더 찍었다. 이제 정상에서의 사진을 다 찍었다. 운무에 덮인 백록담은
가끔 흐린 얼굴을 조금씩 보여줄 뿐이다.
12:25분, 배낭에서 소주 한 병 찰떡 두 개 빵 하나 자유시간 세 개를 꺼내놓고 절하며 26년간 365번이나 산행을 하는 나를
사고 없도록 돌봐주신 신령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별 같은 수현이를 내려 주신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바람이 더 거칠어져서 삼각대를 접었다. 백록담은 이제 완전히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추었고 하늘도 두터운 구름에 덮였다.
으스스 몸이 떨려왔다.

안전하게 성판악코스로 하산하려고 했는데 이군이 관음사코스를 타자고 한다. 지금 안 하면 앞으로도 관음사코스를 탈 일이
없을 거라고 하면서. 그래 그러자.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도 어리목에서 윗세오름대피소 다시 서북벽코스로 정상에 오른 후
장구목으로 내려간 후 거기서 용진각 대피소를 거쳐 관음사코스로 하산 한 적은 있지만 정상에서 왕관바위 곁을 지나
관음사코스를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동릉정상에서 용진각대피소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그 코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게 늘 마음 쓰이기도 했는데 발까지 시원찮은 이군이 그리로 하산하자 하니 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자고 했다. 설마
하산길인데.


정상에 도착한 지 2시간 반 만인 12:30분, 하산 길에 올랐다. 이제 운무 속에 걸었다. 다행히 정상에서 좀 더 내려가자 그
아래엔 운무가 없고 바람까지 시원해서 걷기가 좋았다. 왕관바위 곁의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은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몹시
힘든 코스였다. 그래도 이군이 잘 내려가니 다행이다.
급경사길이 끝나는 곳에 지난 2007년 제주를 휩쓸며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태풍 나리에 흔적도 없이 휩쓸려 사라진
용진각대피소의 기념판이 세워져 있다. 어느 가을 날 아침 장구목에서 내려다보며 용진각대피소를 예쁘게 담은 적이 있는데...

용진각 터에서 장구목을 올려다본다. 꼭 20년 전인 1992년 7월 폭염 속에 장구목에서 혼자 이틀간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둘째 날 물이 떨어져서 갈증을 견디다 못해 여기 용진각까지 내려 와서 계곡의 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장구목으로
올라가느라 엄청 고생을 하기도 했다. 이군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저 꼭대기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내랴왔다 갔느냐며 놀란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40대 때다. 60대 중반인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낸다. 이제 이 길을 내가 다시 걷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더 가니 나리 이후에 건설한 용진각현수교가 나타난다. 튼튼하게 잘 만들었는데 관리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수교는
로프와 철골 연결부 등엔 방청유를 발라서 녹이 스는 걸 막아야 하는데 전혀 그런 조치가 되어 있지 않고 이미 벌건 녹물이
흐르는 곳도 있다. 부식이 심해서 이 다리를 철거하고 다시 만든다면 얼마나 큰돈이 들어갈 것인가.

14:06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해서 삼각봉을 몇 컷 찍었다. 삼각봉대피소는 예전의 용진각대피소가 사라진 후 계곡 건너편의
안전한 곳에 만든 무인 대피소인데 몇몇 사람들이 들어가 쉬고 있었다. 우리도 간식을 먹고 잠시 쉬었다. 그런데 물이
떨어져서 약간 걱정이다. 관음사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계속 우측에 탐라계곡을 끼고 하산하는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 좋다. 그런데 이군이 너무 지친 것 같다. 왜 지치지
않을까. 왼쪽 발가락이 아프니 걷는 게 불편하고 그러니 더욱 피로가 겹칠 것이다.

지친 이군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노래가 끝나도 이군의 반응이 없다.
“노래 어때....?”
“그런 노래 말고 강남 스타일 해봐요.”

나도 이군도 피곤하니 말도 안 하고 걷기만 한다. 말 안 해도 못 간다고 주저앉지 않고 걸어주는 것만도 고맙다.
계곡 건너편의 왕관바위가 우리를 마주 내려다본다. 왕관바위 주변의 단풍이 한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데 지금은 짙은
녹음이다. 우리가 걷는 주변이 운무에 덮이니 숲속은 해가 진 것처럼 어둑어둑한데 젊은 여자가 배낭을 지고 혼자 올라온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25살쯤일까. 정상에 가긴 너무나 늦은 시간인데 어디까지 가려고 혼자 산에 오르는지 모르겠다.
무섭지도 않을까.
“저렇게 가다가 죽어도 모를텐데....”
이군의 걱정이다.

늦은 산수국이 산길가에 여기저기 피어있다. 이미 보라색으로 변한 것도 있고 아직 연두색 봉오리만 오글오글한 것도 있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급경사 돌계단길이 계속되는데 나도 이군도 많이 지쳤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갈증이 났으나 관음사에 도착하기 전엔 물이 없으니 참는 수밖에 없다. 3년 전 가을 이군과 함께 올라왔던 소나무 숲지대에
도착했다. 둥치 아래의 껍질을 보면 흔히 보는 소나무는 아닌데 쭉쭉 뻗은 몸통들이 참 아름답다. 어리목 코스 해발 1300미터
부근의 ‘잘 생긴 소나무’ 그리고 영실코스의 소나무 숲에서 보는 소나무와는 전혀 다르다. 조림숲이 아닌데도 영역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원점비 안내표지가 나온다. 지난 1982년 군수송기 추락으로 53명이나 되는 검은 베레와 공군의 젊음들이
사망한 곳이다. 명령을 수행하다가 그렇게 죽었으면서도 이름 한 자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영혼들 부디 편히 쉬시길 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이군은 이젠 억지로 발 하나 하나를 내려놓다시피 한다.
“이 길은 죽음의 길이예요..... 다시는 이 길로 안 내려갈 거예요...”
정상에서 하산출발 3시간이 좀 더 지나서 탐라계곡의 다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내려가다가 2.3km남았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우리가 새벽 산책할 때 제일 가까운 코스 한 번 도는 게 2.6km인데 이제 그거 한 바퀴 도는 것도 안 남았어. 힘내~.”
“그것도 디기 멀어요....”
지금 이군에겐 2.3km가 아니라 100미터도 멀다.
이군만 먼 게 아니라 내게도 2.3km가 멀다. 걸어도 걸어도 관음사가 보이지 않는다.

탐라계곡에서 1시간 45분을 더 걸은 오후 5시 정각에 관음사코스 입구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4시간 30분이 걸렸다. 심한
갈증에 우선 이온음료를 사서 이군과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택시를 타고 상판악주차장에서 가서 내 차를 몰아 집에 오니 오후 6시다. 집에 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막걸리 두 병과 두부
두 모를 샀다. 이군과 함께 한 365회 째 산행을 자축하려고.


* 산행 이틀 후 배낭을 정리하는데 내 배낭 속에서 500cc 물 한 병이 나왔다. 출발 전 비상용으로 넣어둔 것인데 하루 종일
짊어지고 다니면서도 깜박한 것이다. 하산 시 그 갈증에 이 물 한 병이면 충분했는데...


2012년 8월 29일